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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사건(r18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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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테러
January 19 attacks
[1]
파일:119_BWT_Attack_1.jpg
노던에어 302편북탑에 충돌하는 모습
파일:119_BWT_Collapse.png
노던에어 471편이 충돌한 직후 남탑 붕괴 장면
발생일
2001년 1월 19일 금요일, 8시 42분~10시 6분[RNT]
발생
위치
벨포르 금융지구 인근 고층건물 밀집지역
오보레 공장지대[3]
유형
하이재킹을 통한 자살 테러
원인
이슬람 극단주의를 표방한 정치·종교적 보복
테러 주동자
이브라힘 나쉬디(Ibrahim Nashdi)
노던에어 302/471편 탑승자 포함 총 17명
테러 주동 세력
알후라 알자마아 (Al-Hura Al-Jama'a)[4]
피해
재산
피해
항공기 NE302, NE471 완파
세계무역센터 북탑·남탑 완전 붕괴
벨포르 증권거래소 업무 중단, 벨포르 금융지구 GDP 약 218억 달러 감소
항공·물류 산업 손실 추산 약 350억 달러
주요 외국 자산 약 8% 이탈
사망
총 사망자 수 2,908명[5][6]
- 북탑 1,422명
- 남탑 1,133명
- 기타 353명(인근 건물 붕괴 및 잔해 추락 등)
부상
최소 7,000명 ~ 최대 12,000명
분진
피해자
3,900명 ~ 60,000여 명[7]
여파
루이나 국토안보법 제정 / NIAMIA 대테러 권한 강화
항공 보안 대폭 강화 및 승객 신원 사전확인제 도입
이슬람계 공동체 감시강화와 함께 혐오범죄 급증
루이나 항공청 직속 위기관리본부 신설

1. 개요2. 배경3. 전개
3.1. 항공기 납치
3.1.1. 항공기3.1.2. 테러리스트
3.2. 첫 번째 충돌: 제1세계무역센터3.3. 두 번째 충돌: 제2세계무역센터3.4. NA471편의 추락3.5. 테러 직후
3.5.1. 루이나 정부의 마비
4. 사망자
4.1. 최후의 메시지
5. 왜 막지 못했는가?6. 루이나의 반응
6.1. 예술/문화계6.2. 종교계6.3. 시민사회 및 일반 대중6.4. 정치권의 반응
7. 이후
7.1. 끝나지 않은 피해7.2. 후속 테러
8. 음모론9. 9.11 테러와의 연관성10. 기타11. 여담

1. 개요 [편집]

1·19 테러(January 19 attacks)는 2001년 1월 19일에 루이나 벨포르에서 발생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조직 알후라 알자마아(Al-Hura Al-Jama'a)[8]가 자행한 하이재킹 및 자살 테러 사건이다.
알후라 알자마아 소속 테러범들은 민간 항공기 두 대를 납치하여 루이나 벨포르 시 중심부에 위치한 루이나 세계무역센터(BWT)에 충돌시키는 방식으로 테러를 감행하였다. 이로 인해 세계무역센터 북탑과 남탑이 연쇄적으로 붕괴되고, 벨포르 금융지구는 순식간에 불바다로 변했다.

이 공격으로 2,908명이 사망하고 7,000명 이상이 부상하였으며, 루이나 역사상 최악의 인명 피해를 초래한 단일 테러 사건으로 기록된다. 수도 벨포르 한복판에 위치한 국가 상징적 시설이 붕괴되었다는 점에서, 루이나뿐 아니라 세계 전역에 심각한 충격을 안겼다.

당시 리처드 엘스워스 대통령은 사건 발생 3일 뒤, 전국 생중계 특별 담화를 통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우리는 지금 깊은 고통 속에 있지만, 이 고통은 우리의 자유와 헌법, 그리고 시민의 용기를 흔들 수 없습니다. 루이나는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이 사건은 테러리즘이 단순한 범죄를 넘어, 국가 전체를 겨냥한 전면적 안보 위협이 될 수 있음을 루이나 사회에 각인시킨 계기가 되었고, 이후 루이나의 외교·정보·군사 정책은 1.19 테러 이후 전면 재편되었다. 불과 9일 만에 야당과 여당이 모두 만장일치로 루이나 국토안보법이 제정되었고, MIA국가정보국(NIA)의 권한이 대폭 강화되었다. 항공보안 및 출입국 심사도 전면 개편되었으며, 극단주의 선동 및 종교단체에 대한 정보감시가 국가 차원에서 시행되기 시작했다.

한편 국내 이슬람계 이민자 공동체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혐오범죄도 급증하였고, 급진적 우익 정치세력인 루이나 애국당이 처음으로 대중적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국제적으로는 미합중제국, 플로렌시아와 함께 대테러 공조를 선언하며, 새로운 안보 구도를 구축하는 데 루이나가 핵심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2. 배경 [편집]

1979년 사비에트-고랜드 전쟁 발발 후 이슬람권 각지에서는 '불신자 공산군'과 싸우는 아프간 무슬림들을 돕기 위한 지하드의 일환으로 궐기한 무자헤딘 전사들이 고랜드로 몰려들었다. 냉전으로 사비에트와 대립하던 루이나 정부는 NIA를 통해 그들을 지원했고, 서방 유학을 통해 영어에 능통하던 이브라힘 나쉬디가 그 지도자가 됐다. 그러던 중 1988년, 사비에트가 전쟁에서 손을 떼고 철수를 개시하자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사비에트에 대항한다는 방향성을 잃은 지하디스트 세력을 유지하려던 나쉬디는 지하드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고, 그 대상은 바로 기존의 동맹이던 루이나였다. 같은 해 나쉬디는 (후일 그를 계승하는) 아이만 알자와히리 등의 무자헤딘 베테랑들과 함께 고랜드에서 지하드의 선봉이 될 조직으로 (아랍어로 '근본'이란 뜻인) 알후라 알자미아를 창설했다.

1990년, 사담 후세인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걸프 전쟁이 발발하자 나쉬디는 무자헤딘 조직의 활용을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에 군사 지원을 제안했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 왕가는 그의 제안을 거절했고 대신 루이나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이후 루이나군이 사우디에 주둔하게 되자 나쉬디는 사우디 왕가에 타크피르(배교자)라며 지하드를 선포하였다. 또한 '아라비아반도의 비무슬림을 추방할 것[9]'이라는 하디스를 인용하며 1996년 사우디아라비아에 주둔하는 루이나군에 퇴거를 명령하는 파트와를 내렸다.

알후라 알자미아 창설 전부터 이스라엘과 아랍의 세속주의 독재정권들을 지원하는 루이나에 반감을 품어오던 나쉬디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민간인과 군인을 가리지 않고 전세계 서방권들을 대상으로 하는 테러에 나서기 시작했다. 1998년 알자미아는 고랜드 루이나 대사관 폭탄 테러와 탄자니아 미국 대사관 테러[10]를 감행하면서 전 세계 이슬람 극단주의에 있어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했다. 같은 해 나쉬디는 루이나의 대 이스라엘 정책과 중동 개입을 성토하며 전 세계 무슬림들이 단결해 이슬람 국가들의 공공의 적인 미국과 루이나를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중동은 물론 남아시아와 북아프리카 등 이슬람권 각지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그의 산하에 모여들었다. 충분한 세력을 확보한 나쉬디는 1998년 말부터 시범으로 루이나 본토에 테러를 감행할 조직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1991년 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의 주동자인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도 있었다.

이후의 인터뷰에서 나쉬디는 1982년 레바논 내전 당시 이스라엘 공군이 루이나에서 구매한 루이나제 무기로 베이루트 도심 고층 건물들을 사정없이 폭격하는 것을 TV로 목도하고는 이를 갈면서 이스라엘의 후원자인 루이나의 마천루 등 루이나 건물들에 대한 공격을 염두에 두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으나 나쉬디의 이러한 심리와 실제로 그러한 공격을 감행한 칼리드의 합류는 1·19 테러 계획의 구체화로 이어졌다.
루이나 군사력의 기반인 경제에 타격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경제가 타격을 입으면 그들은 재건을 해야만 할 것이다.

2004년 유고랜드에서 습득된 나쉬디의 녹취록[11]
알자미아의 최종 목표가 된 미국 본토 공격에 있어 나쉬디는 미국의 가장 열렬한 동맹인 루이나에서 먼저 시범적인 형태의 테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루이나 군사력의 기반은 루이나 경제력에 있고, 따라서 루이나 경제의 상징과도 같은 세계무역센터를 테러의 주요 목표로 선정했다. 또한 1월 19일을 실행일로 정한 것은 그가 누차 서방의 중동 개입 시작으로 간주한 제2차 빈 공방전이 절정에 달하던 날이었고, LSEC 총회 개막일이자 나쉬디 자신의 궐석재판 하루 전날이기도 했다. 또한 테러 실행 시간도 이른 아침 시간대라 관광객들이 아닌 출근하는 루이나 시민들을 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날은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이었다.
파일:1000001854.jpg
그에 반해 바로 전날[12]에는 위 사진과 같이 구름이 심하게 껴 있었고 비까지 내렸었다. 만약 테러 날짜가 하루 빨랐다면 시야 확보가 어려워 제대로 충돌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한편 1999년 나쉬디의 참모 모하메드 아테프는 테러 실행 방법으로서 비행기 납치를 결정하고 이를 실행에 옮길 인원을 모집했다. 그 결과 교육 수준이 높고 서방 유학 또는 거주 경험이 있어 영어가 능숙한 이들이 납치조 약 20여 명으로 꾸려졌다. 당시 탈레반의 초청으로 고랜드를 본거지로 삼던 알자미아는 이들을 초청해 훈련시켰다.[13] 납치조는 2000년 봄부터 차례대로 루이나에 들어갔고, 나쉬디는 유고랜드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는 친척을 포섭해 그들의 여권을 발급했다. 2000년에 들어간 1차 납치조는 롱비치의 허프만 비행장 등지에서 조종 훈련을 받았고, 2000년 여름에는 2차 납치조가 합류했다. 2000년 11월, 납치조장 격인 모하메드 아타는 스페인에서 알자미아 간부와 접선하여 최종 계획을 브리핑했다. 나쉬디는 이를 승인하고 최대한 빠른 실행을 지시했다.

이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사실 루이나 정보당국도 어느 정도는 알자미아의 음모를 눈치챘었다. 이미 2000년 전후로 유고랜드 정보당국의 협조로 NIA는 알자미아 조직원들이 루이나 비자를 소지했음을 확인했고, 세계 각지 요원들에게 경고했다. 2000년 7월, NIA는 알자미아 조직원 2인 이상이 루이나에 들어간 것을 확인했고 MIA는 루이나 내 비행학교에서 이상한 조짐을 감지했다. 하지만 두 정보당국의 협조는 거의 없었고, 당연히 이들의 연관성을 찾지 못하고 그저 테러리스트들의 개별 행동으로 치부했다. 심지어 알자미아 조직원에 대한 MIA의 정보공개 요청을 NIA가 거절하는 일도 있었다. 이는 1995년 루이나 법무부가 정보 당국간 극비사항 공유규제를 내렸음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루이나는 2000년 RNS 콜 테러사건 이후에도 알자미아가 단순히 해외에 주둔한 루이나군 공격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여겨 해외 소재 루이나인들의 경계 강화에만 치중했다.

2000년 12월, 마베라 정보 당국은 루이나 측에 알자미아가 루이나 내에서 비행기와 연관된 음모를 진행 중이고, 이는 한 달 안에 집행될 것이라는 중요한 첩보를 전달했다.[14] 그 후 비로소 민간비행학교에 알자미아 조직원이 있다는 MIA의 의혹 제기를 받아들인 NIA는 리처드 엘스워스 루이나 대통령에게 "국내에서 비행기 납치 등의 형태로 공격이 예상된다"고 보고했다.

2000년 12월 29일에는 알자미아 조직원 자카리아스 무사위가 오보레의 비행학교에서 보잉 747기의 조종 훈련을 고집하다가 의심을 받아 체포됐다. 하지만 MIA뿐만 아니라 엘스워스 대통령을 위시로 한 루이나 수뇌부 역시 알자미아를 과소평가하며 납치 후 인질극을 벌일 뿐 감히 루이나 본토를 향한 직접적인 공격을 자행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게 나쉬디가 설정한 테러 개시의 날은 날이 갈수록 묵묵히 다가왔다.

3. 전개 [편집]

Flight Simulation으로 당시 하이재킹 당한 비행기 행적들을 재현한 영상
이 모든 일들은 1월 19일 오전 8시에서 11시까지 약 2-3시간에 걸쳐 벌어졌다.

3.1. 항공기 납치 [편집]

파일:IMG_3324.jpg
세계무역센터에 충돌한 항공기들의 충돌 경로

3.1.1. 항공기 [편집]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NA302 · 노던에어471민간 여객기 2편이 납치됐고, 이들은 모두 계획된 목표에 정확히 충돌했다. 또한 같은 조직이 납치를 시도한 것으로 추정되는 3번째 항공기 NE145편은 루이나 경찰의 조기 개입으로 공항 이륙 직전 저지되었다.[15]

오전 8시 42분경 나쉬디를 포함한 5명의 테러리스트들이 노던에어 302편, NA302편을 납치했다. 이후 NA302편은 벨포르로 향해 오전 9시 03분경 루이나 세계무역센터 북탑에 충돌했다.

오전 9시 17분경 파이살 알 무타르를 비롯한 5명의 테러리스트들이 노던에어 471편, NA471편을 납치했다. 이후 NA471편은 남쪽에서 북상하여 오전 9시 42분경 루이나 세계무역센터 남탑에 충돌했다.

오전 9시 55분경, 루이나 국가정보국(NIA)의 공항 방첩팀이 에포르 국제공항 출발 예정이던 노던에어 145편, NA145편의 탑승자 중 수상한 인물 3명을 체포했다. 기내에 사제 폭발물이 실려 있었으며, 루이나 대통령궁 인근 혹은 국방청사를 목표로 한 제3의 공격이었다는 사실이 이후 수사 결과 드러났다.

3.1.2. 테러리스트[16] [편집]

이름
출생 / 당시 나이
국적
특이사항
이브라힘 나쉬디
(Ibrahim Nashdi)
1973년 2월 11일
당시 27세
아프가니스탄
납치조 행동대장. 벨포르 공대 유학 경험. 비행경력 有
무흐신 아크바리
(Muhsin Akbari)
1979년 9월 6일
당시 21세
고랜드
1998년 이후 고랜드-루이나 밀입국자. MIA 감시 대상 인물
유누스 칼릴리
(Yunus Khalili)
1978년 1월 30일
당시 23세
유고랜드
불법체류자. 벨포르 모스크 출입기록 다수
샤피크 라흐마티
(Shafiq Rahmati)
1980년 3월 19일
당시 20세
아프가니스탄
통역학과 졸업. 문화교류 명목으로 입국
파드 알무타리
(Fadh al-Mutari)
1977년 11월 4일
당시 24세
고랜드
산악전 게릴라 출신. 고랜드 내전 참전자
이름
출생 / 당시 나이
국적
특이사항
파이살 알 무타르
(Faysal al-Muttar)
1974년 4월 9일
당시 26세
고랜드
건설노동자로 위장. 납치조 행동대장
카림 사피
(Karim Safi)
1976년 10월 21일
당시 24세
유고랜드
롱비치 내 불법체류. 자선단체를 통해 루이나 입국
아크람 누르잘라
(Akram Nurzala)
1977년 12월 1일
당시 23세
아프가니스탄
국제이주청 등록자. 실종 처리 이력 존재
샤디크 자와디
(Shadiq Jawadi)
1980년 2월 14일
당시 20세
고랜드
고랜드 북부 부족 출신. 무슬림 형제단과 연계 정황
무니르 하맘
(Munir Hammam)
1981년 5월 3일
당시 19세
유고랜드
고아원 출신. 무슬림 청년단체 회원, 2000년 밀입국

당시 루이나의 큰 공항들은 CAPPS I[17]이라는, 공항에 들어온 모든 개개인을 프로파일링하고 분석하는 시스템을 쓰고 있었는데 논문마다 숫자는 조금씩 다르지만 한 논문에 따르면[18] 19명의 테러리스트들 중 6명이 CAPPS I 시스템에 걸렸고 2차 수색을 받았다고 한다. 사실 공항에서 걸린 테러리스트들의 숫자는 19명 중 10명이었는데 이 중 6명이 CAPPS I 시스템에 걸려들었고 나머지 4명은 가방 속 내용물과 같은 이유로 인해 2차 수색을 받았다고 한다. 문제는 수색을 했음에도 이들이 실질적으로 걸리지는 않았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이 테러리스트들은 테러를 벌이기 전에 사전답사로 보이는 행동을 했었다. 한마디로 CAPPS I에 걸리는 행동들이 무엇인가를 알려고 공항을 사전답사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CAPPS I과 같은 프로파일링 시스템의 실용성에 의문들이 쏟아져나왔으며 루이나가 곧 CAPPS II를 개발하는 까닭이 된다.

자유 유고랜드방송국에서 사건의 원흉인 알자미아의 수장 나쉬디의 2004년 생전 비디오를 녹화한 것을 공개했다. 이 비디오가 대테러 전문가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비디오 내용
[ 펼치기 · 접기 ]
Praise be to Allah who created the creation for His worship, commanded them to be just, and permitted the wronged to retaliate against the oppressor in kind.
찬양받기 위해 피조물을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정의로움을 명하시며, 핍박받는 자들에게 그들이 당한 만큼의 복수를 허락하신 위대한 알라를 찬양하노라.

Peace be upon he who follows the guidance.
이 인도를 따라 살아가는 자들에게 평화가 깃들기를.

People of Ruina, this talk of mine is for you. It concerns the righteous way to prevent another Belfort, and it speaks of the war, its causes, and its consequences.
루이나의 국민들이여, 이 담화는 그대들을 위한 것이다. 또 다른 벨포르의 재앙을 방지하기 위한 길을 제시하고, 전쟁의 원인과 결과를 함께 논하고자 함이다.

Before I begin,
시작에 앞서 말하건대,

I say to you: security is an essential pillar of life, and free men do not surrender their security—contrary to your President Elsworth’s claim that we hate freedom.
안전은 인간의 삶에 있어 필수적인 대들보이며, 진정한 자유인은 자신의 안전을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유를 증오하지 않는다. 엘스워스 대통령의 주장은 거짓이다.

If that were true, let him explain: why did we not strike, for instance, Nabore?
그의 말이 맞다면 설명토록 하라. 예컨대, 왜 우리는 나보레를 공격하지 않았는가?

We know well that those who hate freedom do not possess the courage of the nineteen who soared through the skies of your cities. May Allah have mercy upon them.
우리는 안다. 자유를 증오하는 자들은 당신들의 도시 하늘을 가른 열아홉 형제들처럼 용기를 갖지 못한다. 알라의 자비가 그들에게 깃들기를.

No, we fight because we are free men who do not sleep under oppression.
우리는 자유인이기에 싸운다. 우리는 억압 아래 잠들지 않는다.

We seek to restore dignity and freedom to our lands,
우리는 조국의 존엄과 자유를 되찾고자 하며,

just as you have reduced our homes to ash and silence.
그대들이 우리의 집과 도시를 재와 침묵으로 만들었듯이,

So too shall we reduce yours.
우리 또한 당신들의 조국을 불모의 땅으로 만들 것이다.

No one—except a foolish thief—violates another’s security and believes himself to remain secure.
멍청한 도둑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남의 평안을 짓밟고서 본인만은 무사할 것이라 믿지 않는다.

But those who think, when faced with disaster, search first for its cause—so it may not be repeated.
그러나 생각하는 자들은 재앙 앞에서 가장 먼저 원인을 찾는다. 그것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But you… you have stunned us.
그러나 그대들... 그대들은 우리를 놀라게 했다.

Though years have passed since 1/19, your president still deceives you—twisting truths and hiding from you the real reasons.
1월 19일의 사건 이후 시간이 흐른 지금도, 당신들의 대통령은 진실을 왜곡하고 있으며, 그 원인을 은폐하는 데 급급하다.

Thus the fire remains, ready to ignite again.
그러므로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으며, 다시 타오를 준비가 되어 있다.

So let me speak plainly of the moment the decision was made, and the truth that led to it, so that you may reflect.
그러니 나는 오늘, 그 결정이 내려진 순간과, 그로 이끈 진실을 말하겠다. 그대들이 생각할 수 있도록.

By Allah, it never occurred to us at first to strike the Towers of Trade.
알라께 맹세하건대, 우리는 처음부터 세계무역센터를 공격할 생각이 없었다.

But the pain became unbearable.
그러나 고통은 더는 견딜 수 없는 것이 되었고,

We saw your bombs over baeirut,
우리는 베이루트 상공을 가로지르는 당신들의 폭탄을 보았으며,

your tanks in the markets of avana,
아바나의 시장을 짓밟는 전차를 보았고,

your drones hunting children in nashvile.
네쉬빌의 아이들을 쫓는 드론을 보았다.

And so the idea came.
그래서, 그때 우리는 떠올렸다.

To strike the steel heart of your empire.
당신들의 제국, 그 철제 심장을 강타하겠다는 생각을.

The events that affected my soul in a direct way began in 1982,
내 영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사건은 1982년에 시작되었으니,

when Ruina permitted the Plorensians to bomb the refugee camps of Eshqara,
그해 루이나가 플로렌시아군에게 에슈카라 난민촌을 폭격하도록 묵인하고,

and the 5th Fleet of Ruina hovered over the coast to shield them.
루이나 제5함대가 그들의 머리 위에 떠올라 그 폭력을 방패처럼 덮었을 때였다.

This bombardment began,
그 폭격은 시작되었고,

and the screams came—women shredded, children bloodied, elders weeping under collapsing stone.
여자들은 갈기갈기 찢어졌고, 아이들은 피범벅이 되었으며, 노인들은 무너지는 돌더미 아래에서 오열했다.

I couldn’t forget those images.
나는 그 이미지들을 잊을 수가 없었다.

Blood and limbs torn from the body,
피와, 몸에서 뜯겨나간 팔다리들.

mothers searching for sons beneath ash,
잿더미 아래에서 자식을 찾는 어머니들,

and high rises crumbling with the residents still inside.
사람이 살고 있던 고층 건물이 그대로 무너져 내리는 그 순간을.

The rockets rained down like punishment from men who knew no mercy.
로켓포가 비처럼 내렸고, 그것은 자비를 모르는 자들의 형벌이었다.

The world watched. And heard. And did nothing.
세상은 그것을 보았고, 들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It was like placing a crying child before a starving jackal.
그것은, 우는 아이를 굶주린 승냥이 앞에 내놓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And I wondered:
그때 나는 생각했다.

Could this jackal understand any language but fire?
이 승냥이가, 불길 말고 다른 언어를 이해할 수 있을까?

In those days, something changed in me.
그날 이후, 내 안에서 무언가가 달라졌다.

Ideas I could not describe began to stir,
형언할 수 없는 생각들이 내 영혼을 파고들었고,

and from them, a fire took root—a fire that burned with the conviction to end this tyranny.
그 생각들 속에서 하나의 불길이 피어올랐다. 이 폭정을 끝내야 한다는 확신이 태어난 것이다.

And as I stood before the ruins of the camps,
그리고 내가 그 난민촌의 잿더미 앞에 섰을 때,

I said to myself: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Let them taste what we have tasted.
그들 또한 우리가 맛본 것을 맛보게 하자.

Let their towers fall as ours have.
우리의 탑이 무너졌듯, 그들의 탑도 무너져야 한다.

And on that day, it became clear to me—oppression is not an accident in Ruina.
그날, 나는 확신했다. 압제는 루이나에게 있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It is policy.
그것은 의도된 정책이었다.

To bomb and burn and bury children alive—
아이들을 불태우고, 폭격하고, 산 채로 묻는 것.

That, to them, is peace.
그들에게 그것은 평화였다.

To resist them? That is terrorism.
그들에게 저항하는 것은? 그건 테러였다.

Such is their logic.
그것이 그들의 논리였다.

The embargoes that choked Narabat,
나라바트를 숨 막히게 했던 금수조치나,

the airstrikes that tore Sabrin apart,
사브린을 찢어발겼던 공습이나,

all of it, under the name of "liberty and order."
모두가 ‘자유와 질서’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었다.

Should a man be blamed for defending his sanctuary?
과연 한 인간이 자신의 안식처를 지키기 위한 행동으로 비난받아야 하는가?

Is defending oneself and punishing the aggressor in kind, objectionable terrorism?
자기 자신을 지키고, 공격자에게 동일한 방식으로 되갚는 것이 과연 부끄러운 테러리즘인가?

If it is such, then it is unavoidable for us.
만약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선택지가 없다. 그것 외에는.

This is the message which I sought to communicate to you in word and deed, repeatedly, for years before 1.19.
이것이 바로 내가 1.19 이전 수년간, 말과 행동으로 그대들에게 전달하려 했던 메시지였다.

And you can read this, if you wish, in my interview with Kareem Dajani in The Beacon in 2020, or with Jalil Marcus on RNB in 2021, or my meeting with Sanaa Qureishi in 2023.
그리고 당신이 원한다면, 2020년 《비컨》지의 카림 다자니와의 인터뷰에서, 2021년 RNB의 잘릴 마커스와의 대화에서, 혹은 2023년 사나 쿠레이시와의 만남에서도 이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You can observe it practically, if you wish, in Bexara, in Tavros, and in Merdan.
혹은 보다 실제적인 사례로, 벡사라에서, 타브로스에서, 그리고 메르단에서 벌어진 일들을 당신이 바라본다면.

And you can read it in my interview with Samir al-Makki, as well as my interviews with Helena Stone.
또한 사미르 알-마키와의 인터뷰, 그리고 헬레나 스톤과의 인터뷰에서도 이 내용은 반복되었다.

The latter is one of your own, a citizen of Ruina and a follower of your creed, and I have regarded her as neutral.
헬레나는 당신들 중 한 명이며, 루이나 시민이자 당신들과 같은 신념을 가진 자이다. 나는 그녀를 중립적인 인물로 간주했다.

But will the hypocrites of liberty in Belfort Hall, or the networks under their thumb, dare broadcast such words?
그러나 벨포르 홀에 있는 '자유'의 위선자들, 혹은 그들의 손아귀에 놓인 방송국들이 과연 이러한 말을 방송할 용기가 있을까?

Would they allow the people of Ruina to hear why we rose, and how your hands forged the war you now fear?
그들이 정말로 루이나의 국민에게 우리의 분노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그대들의 손이 어떤 전쟁을 잉태했는지를 듣게 해줄까?

If you were to confront these reasons, truly, then the path to security—before 1.19—may yet be found.
만약 그대들이 이 모든 이유를 직면한다면, 과거 1.19 이전의 ‘안보’로 이어지는 길은 여전히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As for the results of this conflict, by the decree of the Almighty, they have been fierce, piercing, and beyond all expectations.
하지만 이 전쟁의 결과는, 전능하신 이의 뜻으로, 격렬했고, 뼈아팠으며, 모든 예상을 넘어섰다.

And one reason for this, is that we found the current regime in Ruina so similar to the tyrannies of our own lands—
그 이유 중 하나는, 루이나의 현재 체제가 우리 땅의 폭군들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half ruled by generals, and the other half by the sons of ministers and merchant kings.
절반은 장군들이, 절반은 장관들의 자식들과 상인 귀족들이 지배하는 나라처럼 말이다.

Our experience with them is long, and both breeds are full of men swollen with pride, blind with greed, and addicted to power.
그들과의 경험은 길었고, 이 두 부류 모두 교만과 탐욕에 찌들었으며, 권력에 중독되어 있다.

This resemblance became clearest after the visits of President Fairfax to our region.
이 닮음은 페어팩스 대통령이 우리의 지역을 순방한 이후 더욱 뚜렷해졌다.

At a time when some of our compatriots were dazzled by Ruina, hoping that the visits of President Colton would bring reform to our countries,
당시 우리 형제들 중 몇몇은 루이나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혀 콜턴 대통령의 순방이 우리의 나라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 믿고 있었다.

he, on the contrary, returned from those visits inspired not by democracy but by the longevity of monarchs and generals—
그러나 그는 민주주의가 아닌, 왕들과 장군들의 장기 집권에서 영감을 받았다.

and envied their decades of unchecked power, unaccountable embezzlement, and brutal suppression.
그리하여 감사 없는 부정 축재와 무제한의 권력을 부러워하기 시작했다.

So he passed on dictatorship and suppression of liberty to his son, cloaked under the name of the Homeland Security Act.
그래서 그는 독재와 자유 억압을 아들에게 물려주며, 그것을 '국토안보법'이라는 미명으로 감쌌다.

They named it anti-terrorism.
그들은 그것을 테러방지라 불렀다.

In addition, Fairfax authorized the appointment of his relatives as regional governors,
뿐만 아니라, 페어팩스는 자신의 친족들을 주요 주지사로 임명하였으며,

and he did not forget to import electoral fraud techniques from our region’s dictators, applying them in Belfort when results seemed unfavorable.
선거 결과가 뜻대로 되지 않자, 우리 지역 독재자들로부터 선거 조작의 기술을 들여와 벨포르 선거에 적용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All that we have mentioned has made it easy for us to provoke and bait this administration.
우리가 언급한 모든 것들이, 이 정권을 도발하고 미끼로 유인하는 일을 손쉽게 만들어주었다.

All we had to do was send two brothers of the Movement to the far eastern slums,
우리는 그저 교단의 형제 두 사람을 동쪽의 빈민가로 보냈고,

raise a black banner marked “La Ilaha Illallah” on a rooftop,
그곳의 옥상에 '라 일라하 일랄라'라 적힌 검은 깃발을 게양함으로써,

and the generals would scramble—dragging the nation into another distant war, costing them lives, coin, and credibility.
장군들은 광분해 달려들었고, 나라는 또 다른 전쟁 속으로 끌려갔으며, 생명과 돈, 그리고 신뢰를 함께 잃게 되었다.

All for the modest gain of their contractors and private interests.
오로지 일부 사기업의 이익을 위한 값비싼 대가였다.

And we have not forgotten the lessons from Merdan and from our years in the Eastern Desert—
우리는 메르단과 동부 사막에서 배운 교훈을 잊지 않았다—

where we bled empires slowly, quietly, for a decade, until even they had no choice but to collapse.
우리는 열 해를 넘도록 조용히, 서서히 제국의 피를 말려 그들이 스스로 무너질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All praise is due to the One.
모든 찬양은 오직 그분께.

So we are continuing this path, to drain Ruina’s strength until its economy buckles,
그러므로 우리는 이 길을 계속 걷는다. 루이나가 더는 버틸 수 없을 때까지 그 피를 짜내며,

until their pride turns to panic.
그들의 오만이 공포로 바뀌는 그날까지.

But let no one mistake: it is not we alone who orchestrated this.
그러나 오해하지 마라. 이 모든 것이 오직 우리만의 공이 아니었다.

Indeed, those in Belfort—who opened wars to feed their steelworks, oilmen, and contractors—
사실 벨포르의 자들은 방산업과 정유업, 그리고 건설 재벌을 위해 전쟁을 열었고,

they too have played their part in achieving our goals.
그들 역시 우리의 목표를 이루는 데 있어 큰 역할을 했다.

So much so, that to some foreign observers, it now appears that we and the Palace act as one team—
어떤 외국 관찰자들은 지금의 상황을 보며, 우리가 궁정과 한 팀처럼 움직이는 것처럼 느낄 정도로,

pursuing the same end through different means.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목적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These are not my words alone—British analysts, former envoys, and scholars at the Royal Institute have whispered the same.
이 말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영국의 분석가들, 전직 특사들, 왕립국제문제연구소의 학자들도 그렇게 말해왔다.

When analysts pointed out, for example,
“The Movement spent no more than 500,000 dollars on the Belfort operation, while Ruina, from that incident and its aftermath, incurred damages exceeding 500 billion,”
일례로, 일부 분석가들은 다음과 같은 지적을 내놓았다.
“교단은 벨포르 작전에 고작 50만 달러를 투입했을 뿐인데, 루이나는 이 사건과 그 여파로 인해 5천억 달러 이상의 손실을 입었다.”

Meaning that, by the permission of Allah,
each dollar of the Movement brought a million in loss to the regime.
이는 곧, 알라의 뜻에 따라,
우리가 1달러를 쓸 때마다 루이나는 백만 달러의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는 뜻이다.

Even excluding the collapse of thousands of businesses and the hemorrhage of livelihoods,
the economic deficit has reached a scale of devastation that exceeds a trillion.
수천 개의 사업체가 무너지고 생계가 붕괴된 상황을 제외하더라도,
재정 적자는 이미 1조 달러를 넘긴 천문학적 수준에 도달하였다.

And what is more bitter for Ruina is this:
The Movement has forced the Colton administration to rely on emergency military funds to keep up the double fronts in the South Sea and the Eastern Desert.
그리고 루이나에게 있어 더욱 뼈아픈 사실은,
교단이 엘스워스 정권으로 하여금 남해와 동부 사막의 이중 전선을 유지하기 위해 긴급 군사기금에 손을 대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This is clear evidence, by the will of Allah, that our strategy of bleeding the empire into bankruptcy is succeeding.
이는 분명한 증거다. 알라의 뜻으로, 우리가 펼치는 '출혈로 제국을 무너뜨리는 전략'은 성공하고 있다.

Yes, the Movement has gained.
But let us not forget: so has the regime.
그래, 교단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잊지 마라. 루이나 정권 또한 이익을 거두었다.

Look to the no-bid contracts that fell into the hands of Colton’s shadow corporations—like the Plaza Group and the Belfort Consortium.
리처드 가문과 결탁한 그림자 기업들—플라자 그룹이나 벨포르 컨소시엄 같은—
그들에게 떨어진 수의계약을 보라.

Who truly benefits from war?
And who truly pays for it?
과연 이 전쟁에서 누가 이익을 얻었는가?
그리고 그 대가는 누가 치렀는가?

The answer is clear: the true loser is not the Palace, not the generals, not the businessmen.
It is you. The people of Ruina.
답은 분명하다. 이 전쟁의 진정한 패자는 궁정도, 장군들도, 사업가들도 아니다.
바로 너희다. 루이나 국민들이.

And for the record, we had agreed with Commander-General Adeel Rashwan—may Allah have mercy on him—
that all operations must be completed within 20 minutes, before the Palace even wakes.
공개적으로 말해두자면, 우리는 작전지휘관 아딜 라슈완[19]과 함께 이렇게 합의했었다. “모든 작전은 궁정이 눈치채기 전, 20분 안에 완결되어야 한다.”

It never occurred to us that the Supreme Commander of the Ruinian Armed Forces would abandon 50,000 of his own citizens inside the Third Belfort Complex.
우리는 상상하지 못했다. 루이나 군 최고통수권자가 벨포르 쌍둥이 빌딩에 갇힌 5만 명의 국민들을 버려두고 외면하리라고는.

Abandon them at the very moment when they cried out for him.
그들이 절망 속에서 그를 가장 필요로 했던 그 순간에.

But perhaps to him, reading to schoolchildren about a lamb and its shepherd was more important than the sky raining fire upon his own capital.
그러나 어쩌면, 그의 눈엔 수도에 불이 떨어지는 와중에도 어린아이들에게 양치기 동화를 들려주는 것이 더 중요했는지 모르겠다.

We were thus granted triple the time we needed to execute.
그래서 우리는 본래 계획했던 시간보다 세 배나 더 여유롭게 작전을 실행할 수 있었다.

All praise is due to Allah.
모든 찬양은 오직 알라께..

3.2. 첫 번째 충돌: 제1세계무역센터 [편집]

내레이션[20]: 오전 9시 12분[21][22]이었습니다. (It was nine twelve in the morning.)
알렉산더 브래넌[23] 대대장[24][25]: 벨포르 도심에서 그렇게 큰 비행기 소리가 날 일은 없었죠. 그런데 그날은 정말 엄청난 굉음이었습니다. (You just don't hear planes that loud in Belfort. But that day… it was deafening.)
(비행기가 날아오는 소리)
(폭발음)

주변 시민들: 세상에! ([Oh my God!]!)
소방관[26]: 직감했죠. 오늘이 우리 생애 최악의 날이 되겠구나.[27] (Right then and there, I knew this was gonna be the worst day of our lives.)
NA171
AM 8:46

1WTC에 충돌한 항공기는 노던에어 항공 171편으로, 대장인 모하메드 아타 등 5명의 하이재커를 제외한 76명의 승객과 승무원 11명을 태우고 비행했다. 초유의 사태에 국가항공국은 긴장했고 루이나 공군은 사라져 버린 NA171편을 찾으려고 전투기를 내보냈지만 그 때는 이미 충돌한지 한참 지난 후인 데다 첫 충돌 비행기가 NA171편이라는 것을 파악하지 못해 모두가 보이는 곳에서 불타던 NA171을 애타게 찾아다니는 헛수고를 벌였다.

목격자들은 큰 충격을 받았으며, 고의 연쇄 테러의 첫 공격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단지 조종사의 실수나 비행기 오작동으로 충돌한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으나, 이미 첫번째 충돌 시점에서 의도적이고 고의적인 공격이라고 인지한 사람들 또한 많았다. 현재 공개되어 있는 1·19 관련 다큐나 많은 영상에서 최초 충돌 직후 사람들이 "의도적인 충돌이었다"라고 증언하는 부분이 꽤 나오며, 당장 이 문서에 링크되어 있는 소방관들의 다큐(첫번째 충돌이 유일하게 영상 기록된)에서도 의도적 공격으로 의심하는 증언이 포함되어 있다.

오전 8시 49분경, 언론들은 이 사고를 긴급 보도하기 시작했고, 이후 WTC에서 사람들에게 비상대피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충돌이 일어난 곳은 1WTC였기 때문에 2WTC에 있는 사람들의 피난을 중단시켰고 사람들을 다시 안으로 들여보내기 시작했다.

2WTC에 있던 사람들은 건너편에 불이 났나 보다라고 생각했고 2WTC 방송실에서는 "긴장하지 말고 제자리에 편안히 있으라"는 방송을 했다. 당시는 첫 충돌이 '고의 연쇄 테러의 첫 공격'이라는 것이 파악이 안 된 상황이었다. 사실 옆의 1WTC가 곧 무너질 것이었기에 2차 테러가 없었더라도 당장 대피를 하는 것이 옳았으나, 이 정도 규모의 사고가 처음 있는 일이었기에 1WTC가 무너질 것이라는 결론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28]

3.3. 두 번째 충돌: 제2세계무역센터 [편집]

파일:npt2-impact.jpg
노던에어 175편이 세계무역센터 제2타워(WTC2)에 충돌하기 직전의 모습
승객 51명과 승무원 9명을 태우고 비행 중이던 노던에어 175편(Northern Air Flight 175)은, 오전 9시 29분경 관제소와의 교신이 끊겼다. 비행기는 정상 항로를 이탈해 벨포르 상공으로 진입했으며, 곧 불규칙한 기동과 함께 시속 850km에 달하는 고속으로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루이나 연방항공청(RFA)이 제공한 관제기록에 따르면, 이 항공편은 제1 타워 충돌로부터 약 17분 후, 정확히 세계무역센터 제2타워(WTC2)의 동측 면을 향해 돌진해 충돌하였다.
노던에어 175편이 세계무역센터 제2타워에 충돌하는 장면[29]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0,Gray><nopad>
테러 이후 CNN 뉴스에서 나온 제보된 2차 테러 영상
NA175
AM 9:03
결국 1WTC가 불타는 모습이 루이나 언론사들을 통해 생방송으로 중계되던 9시 3분, 수많은 사람들의 눈과 방송 카메라가 전부 WTC를 향한 상태에서 두 번째 테러가 일어났다. 각 언론사들이 1WTC가 불타는 모습을 중계하던 중 실시간으로 또 다른 비행기가 2WTC에 충돌하는 모습을 목격한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1WTC 항공기 충돌을 아직 테러로 보도하지 않고, 여전히 비행기 충돌 원인을 확인하고 있던 당시 속보 방송 앵커들과 아나운서들은 중계 카메라를 통해 들어오는 적나라한 참상을 보고 비명을 지르거나 최대한 자제해서 비속어를 내뱉는 등 경악했다.

당시 NBC, RBS, UZZ 등 지상파 모든 방송이 1WTC의 화재 현장을 속보로 전하고 있었고, 루이나인 상당수가 이를 시청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미 비행기 충돌로 불타던 1WTC 바로 옆의 2WTC에 여객기가 충돌하는 순간, "루이나가 공격 받고있다"[30]는 사실을 수천만 시청자들이 실시간으로 확인한 셈이었다. 위 UZZ 동영상의 카메라맨은 항공기소음이 커지던 시점부터 크게 동요해 화면이 크게 흔들렸고, 아나운서와 취재진은 10초 가량 말문이 막혀버렸다. 생방송 중 실시간으로 발표 등을 중계하는 게 아닌 이상 아나운서나 리포터가 10초씩이나 말이 끊기면 방송사고인데, 이 전대미문의 상황은 모두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이는 1·19 테러가 굉장히 치밀하게 계획된 테러였음을 증명하는데, 1WTC 충돌 직후 이목이 집중된 상태에서 시간차를 두고 옆건물에 또 다시 충돌하며 루이나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테러라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달한 것이다. 사람들이 사고현장을 보고 있는 상태에서 두 번째 테러가 가해진 것은 현재까지도 유례를 못 찾아볼 정도로 매우 충격적인 사례이다. 루이나의 중심지인 벨포르를, 그것도 두 번의 공격이 가능하고 충격을 가장 극대화시킬 수 있는 구조와 환경을 갖춘 쌍둥이 빌딩을 선택한 까닭도 거기에 있다.
시민들이 두 번째 충돌이 발생하여 경악하는 모습
첫 번째야 사고일 가능성이 있었지만, 바로 똑같은 종류의 사고가 그것도 바로 옆 건물에서 벌어져 누가 봐도 고의적인 테러 공격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첫 충돌이 발생한 상태에서 바로 옆 빌딩에 두 번째 비행기가 충돌했으니 사람들은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당시 RBS 뉴스 중계 앵커는 충돌 장면을 본 직후 “이건 단순한 사고가 아닙니다. 의도적인 겁니다.(This seems to be on purpose)”라고 말할 정도로, 현장에 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방송국 관계자들 역시 점차 이것이 우연한 항공사고가 아닌, 치밀하게 계획된 테러임을 감지하고 있었다.[31] 하지만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32]

루이나 전역에서는 1차 충돌 직후부터 RBS, TNC, VNL 등 주요 방송사가 일제히 특별 편성을 시작했다. 특히 벨포르, 세인트 바룬, 에포르 등의 도시에서는 긴급 속보 방송이 공영망을 통해 전국으로 퍼졌고, 대학 포럼과 일부 고등학교 학생회 내부망에서는 CNN이나 VNL 중계 영상을 저장해 개인 서버에 업로드하는 등 PC통신 기반의 정보 공유가 비공식적으로 이루어졌다. 다음날인 1월 20일부터는 방송 3사가 전국 방송 일정을 중단하고 하루 종일 속보로 사건을 다루었으며, 시민들은 극도의 공포와 혼란에 빠져들었다.

당시 루이나 현지의 뉴스 생중계와 시민 촬영 영상은, 두 항공기 충돌 장면과 그 후 이어진 사람들의 충격, 절규, 혼란을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선명하게 담아냈다. 1차 충돌 직후 불과 17분 만에 일어난 2차 자살공격은, 단순히 사고가 아닌 국가적 재난이라는 사실을 실시간으로 전 국민에게 각인시켰다.

생중계 중에는 세계무역센터 인근 고등학교에 폭발물이 설치되었다는 속보가 나오기도 했고, 주변 건물이나 차량에서 연쇄적으로 폭발이 발생했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다.[33] 심지어 국립도서관과 국가기록청에 불이 났다는 보도까지 나오며, 경찰과 소방, 구조대, 언론사 전부가 사실 확인조차 힘든 혼돈에 휩싸인 채 각종 오보와 루머를 내보냈다.

초강대국 루이나의 심장부인 벨포르, 그것도 대통령궁과 의회에서 불과 몇 블록 떨어진 도심 중심가가 전혀 대비 없이 공격당했다는 현실은, 국민들에게 상상 이상의 불안을 안겨주었다. 자살 테러를 감행할 만큼 조직적인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그보다 훨씬 더 무자비한 공격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퍼졌고, 가해자가 누구인지조차 모르는 상황은 공포를 더욱 키웠다.

조사가 본격화된 뒤에야 이 테러가 고랜드계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조직 '알후라 알자미아야(Al-Hura al-Zamiya)'의 소행임이 밝혀졌지만, 당시만 해도 루이나 국민은 언제, 어디서, 얼마나 큰 테러가 또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특히 VNL에서는 1WTC 인근 지하철역이나 도로변에서 폭탄이 터졌고 그것이 북쪽 타워 붕괴의 원인이 되었다는 내용을 보도하여, 후일 수많은 음모론의 단초가 되었다. 또한 2WTC 하층부에 있었던 이들은 상층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도무지 파악하지 못한 채, 방송에서는 “자리에 있으라”고 했다가 “대피하라”고 다시 말을 바꾸는 혼선 속에 갇혀 있었다.[34]

충돌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타워 상층부에 고립된 일부 사람들은 뜨거운 열기와 유독가스, 그리고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건물 밖으로 몸을 던졌다. 이들은 대부분 북쪽 타워(1WTC)에 고립된 사람들이었으며, 당시 내부에선 질식사하거나 투신 외에는 다른 생존 수단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모습은 전 세계에 생중계되어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

오전 9시 30분경, 북타워에서 투신한 세 사람 중 한 명이 지상에 있던 소방대원 대니얼 T. 셔(Daniel T. Suhr)를 강타해 그 자리에서 사망하게 한 사건은 응급요원 중 최초의 희생 사례로 기록된다. 추락사한 희생자의 수는 2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며, 다수의 시신은 건물 붕괴와 함께 유실되어 신원 확인조차 이루어지지 못했다. 당시 루이나 정부는 투신자 희생자가 없다는 공식 입장을 고수했으나, 수년 뒤 유족 및 언론의 항의에 따라 200명 이상이 투신으로 사망했음을 공식 인정하였다.

투신은 단순한 자살이 아닌,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연기와 불길, 무너져 내리는 구조물 사이에서 구조를 기다릴 수 없었던 이들은 결국 스스로 뛰어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언론 보도와 정부 문서 등에서 '점퍼(Jumper)'로 분류되며, 초기에는 이들의 마지막 모습이 무분별하게 유포되었으나, 최근 들어 존엄성을 지키려는 노력으로 상당수 자료가 삭제되었다.

구조활동에 나선 지상 소방대원들은 절망에 휩싸였다. 건물 위에서 사람들이 차례차례 떨어져 내리는 충격음이 끊임없이 울려 퍼졌고, 현장에 있던 구조요원들은 그 ‘쾅’ 소리가 무엇인지 깨달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이 상황은 뉴스카메라에도 포착되었고, 루이나 전역에 생중계되었다. 일각에서는 헬기를 통한 구조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으나, 당시 초고층 화재 현장에서 발생하는 강력한 기류와 시야 확보 문제로 인해, 헬기의 투입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투입된 헬기들은 단지 고도를 유지하며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달하는 용도에 그쳤다.
벨포르 경찰 항공대의 구조시도[시청주의]

그나마 노던에어 항공 175편에게 피격당한 2WTC에 9시 37분 벨포르 경찰 항공대의 헬리콥터가 위험을 무릅쓰고 세계무역센터의 옥상으로 착륙과 강하(레펠)를 시도했으나, 화재의 열기 때문에 엔진 온도가 급상승해 실패했다. 당시 참가했던 항공대원의 증언으로 옥상의 돌멩이까지 다 보일정도로 가까이 접근했다고 한다(영상 8분13초). 강하에 실패한 후엔 옥상에 사람이 단 한명이라도 있다면 그 인원이라도 구조하려 했으나 당시 옥상엔 아무도 없어서 수포로 돌아갔다. 쌍둥이 빌딩의 모든 문은 하나의 제어 시스템을 통해 컨트롤 되는데, 하필 충돌로 인해 제어 시스템이 망가졌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상층부에 있던 생존자들이 헬기 구조를 목표로 어떻게든 옥상 문을 개방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으나, 결국 문은 빌딩이 무너지는 그 순간까지 열리지 않았다.

결국 9시 41분에 벨포르 경찰청이 "헬기 구조 작업을 포기하라"고 지시하여 헬기를 통한 구조시도는 중단했다.
대통령 비서실장 앤드루 키드로부터 루이나가 공격받고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 듣고 있는 리처드 엘스워스 대통령
"A second plane hit the second tower, Ruina is under attack."
"두 번째 항공기가 두 번째 타워에 충돌했습니다. 루이나가 공격받고 있습니다."

앤드루 키드 백악관 비서실장, 엘스워스에게 귓속말로 소식을 전하며.

같은 시각, 벨포르 인근 롱게일 초등학교에서 어린이들에게 시민교육 그림 동화책을 읽어주는 수업에 참관 중이던 리처드 엘스워스 대통령[36]은 대통령실 비서실장 에드먼드 베일리로부터 루이나가 공격받고 있다는 충격적인 보고를 받게 된다.

엘스워스 대통령은 보고를 받은 뒤에도 수업을 계속 지켜보다가 약 6분가량 지난 뒤 교실을 조용히 떠났다.[37]

이후 루이나 진상조사위원회로부터 "왜 6분 동안 교실에 머물렀느냐"는 지적을 받자, 엘스워스는 “학생들을 놀라게 하지 않기 위해서였고, 상황을 정리하며 최대한 평온한 태도를 유지하려 했다”고 해명했다.[38] 이후 인터뷰에서도 그는 “그 순간 당황하거나 감정을 드러내면 더 큰 혼란이 올 것 같았다”며, 의도적으로 침착을 유지하려 했다고 설명했다.[39]

사건 이후 대통령실은 “엘스워스 대통령은 즉시 회의실로 이동했다”고 발표했으나, 실제 영상에서 엘스워스는 보고를 받은 직후 표정이 급격히 굳어지고, 이후 교실에서도 수업에 집중하지 못한 채 깊은 심경에 잠긴 모습이 포착되었다.

직후 엘스워스 대통령은 학교 체육관으로 이동해, 1.19 테러에 관한 첫 번째 긴급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이 담화는 예정된 일정과는 전혀 무관한 급박한 기자회견 형식으로 진행되었으며, 테러 발생 약 90분 만에 공개된 것이다. 이후에도 엘스워스 대통령은 수차례에 걸쳐 국민 담화와 의회 연설을 통해 충격에 빠진 루이나 국민들을 안심시키는 데 전력을 다했다. 이 연설들 중 1월 19일 밤 11시에 방송된 긴급 담화는 현재까지도 가장 잘 알려져 있다.
1.19 대국민 연설

1.19 테러 당일, 벨포르 수도권 상공에서 발생한 비정상 항로 항공기 신호에 불안을 느낀 루이나 항공안전청(NAAS)은 즉시 루이나 공군과의 연락을 시도했으나, 당시 각급 기관은 새해 연휴 이후 첫 업무 주간의 인력 공백과 통신 혼선에 시달리고 있었다. 일부 관제소는 민간기 전산 오류로 인해 초기에 경보 자체를 누락했으며, 비행 정보가 너무 빠르게 쏟아진 데다, 상당수는 SNS를 통한 확인되지 않은 제보가 섞여 혼란이 가중되었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것은 같은 날 오전 8시부터 시행 중이던 루이나 공군 제15전술비행단의 방공훈련이었다. 훈련 시나리오와 실제 상황의 구분이 처음에는 불가능했으며, 이로 인해 요격기 투입과 통제권 이양이 수 분에서 수십 분씩 지연되었다. 루이나군 통신기록에 따르면, 테러 발생 직전까지도 "훈련 상황인지 실제 대응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보고가 다수 있었으며, 이는 이후 국회 정보위원회 청문회에서도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항공안전청, 국방부, 대통령실, 그리고 현장 공군 관제요원들은 루이나 영공을 비행 중인 2,300여 대의 항공기 중 실제 납치기로 추정되는 항공기의 궤도와 식별 부호를 추려내야 하는 전례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결과적으로 벨포르 남부 외곽에서 납치 항공기가 루이나 타워에 충돌하기까지, 공군은 단 한 발의 경고사격조차 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대테러 대응체계의 전면적 개혁이 불가피해졌다.

3.4. NA471편의 추락 [편집]

=== 세계무역센터의 붕괴===

3.5. 테러 직후 [편집]

3.5.1. 루이나 정부의 마비 [편집]

4. 사망자 [편집]

4.1. 최후의 메시지 [편집]

5. 왜 막지 못했는가? [편집]

6. 루이나의 반응 [편집]

6.1. 예술/문화계 [편집]

6.2. 종교계 [편집]

6.3. 시민사회 및 일반 대중 [편집]

6.4. 정치권의 반응 [편집]

7. 이후 [편집]

7.1. 끝나지 않은 피해 [편집]

7.2. 후속 테러 [편집]

8. 음모론 [편집]

9. 9.11 테러와의 연관성 [편집]

10. 기타 [편집]

11. 여담 [편집]

[1] 루이나에서는 간단히 ‘1·19’, ‘벨포르 테러’, 또는 ‘BWT 공격’으로도 불린다. 북미의 ‘9/11’처럼 날짜 중심의 사건 명칭이 일반화되었다.[RNT] 루이나 표준시 (UTC+01:00) 기준[3] 루이나 의회를 향하던중 내부 저항으로 추락[4] 루이나 국가정보국(NIA)이 2000년 테러위험조사 보고서에서 주시한 중동계 테러조직으로, 본 사건 이후 조직 전원이 국제수배되었다.[5] 민간인 2,891명, 테러리스트 17명. 이 중 271명은 소방 및 경찰관으로 구조 작업 중 순직.[6] 외국인 사망자: 플로렌시아 69명, 미합중제국 45명, 프랑스 38명, 영국 22명, 동사랜드 19명, 마베라 13명 등[7] 붕괴 당시 비산된 콘크리트·석면 분진에 의한 호흡기 질환, 폐암 등 장기피해 발생.[8] 중동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수니파 계열의 반서구·반세속주의 무장 단체. 루이나 정부가 1997년부터 테러조직으로 공식 지정.[9] 정확히는 무함마드가 살아 있는 한 기독교도와 유대인을 아라비아반도에서 축출할 것[10] 역설적이게도 탄자니아 미국 대사관이 있던 다르에스살람은 아랍어로 '평화의 집'이란 뜻이다.[11] 이로써 지속적으로 1·19 테러의 책임을 부인하던 나쉬디의 1·19 테러 주도가 더 확실해지는 증거가 되었다.[12] 사진 우측 하단에 보면 1 18(1월 18일)이라고 적혀 있다.[13] 훈련 내용에는 서구 의상을 입는 법, 음식점에서 주문하는 법 따위도 있었다고 한다.[14] 심지어 라 마베라 정보당국은 알자미아 측의 작전암호(성대한 결혼식)까지 전달했다.[15] 이후 이륙 지연이 없었다면 해당 기체는 에포르 국제공항을 출발해 대통령궁 인근에 충돌할 예정이었다는 정보가 루이나 정보국에 의해 밝혀졌다.[16] 당연한 소리지만 이들은 전원 테러 성공과 함께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17] Computer-Assisted Passenger Prescreening System Version 1, 컴퓨터 보조 승객 판별 시스템.[18] Barnett, A.(2004). CAPPS II: The foundation of aviation security?. Risk Analysis, 24(4), 909-916.[19] 알라여 그에게 자비를[20] 내레이션은 당시 벨포르 제7소방대대(Tower Squad 7)의 소방관이었던 에릭 라몽트(Eric Lamont) 대원이 맡았다. 그는 1월 19일 오전 비번이었고, 테러 발생 사실을 집 근처 카페에서 뉴스를 통해 뒤늦게 알게 되었다고 회고했다.[21] 루이나 시간 기준. GMT+1[22] 한국시각 오후 5시 12분[23] Alexander Brannan (1959 ~)[24] 당시 벨포르 시 구조사령부 제7소방대대 대대장이었으며, 2021년 정년퇴임했다.[25] 1.19: The Ruina Catastrophe (벨포르 다큐멘터리, 2023)에서도 증언자로 출연. 당시 구조사령부 지휘차량을 타고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간부였으며, 남동생 다니엘 브래넌(소방사)이 회색탑 북동쪽 엘리베이터구간으로 진입해 대피 유도를 하다가 매몰되어 순직했다.[26] 줄리안 스콧(Julian Scott). 당시 제7소방대대의 베테랑 대원이자 현장 영상에도 등장한다.[27] 이 발언은 원본 다큐멘터리에서도 실제로 등장하며, 루이나판 다큐멘터리인 “1.19: A Nation Under Fire” (2023)에서도 동일하게 인용된다.[28] 그래서 2WTC가 처음 무너질 당시에 상당수의 언론은 또 하나의 테러나 폭발이 일어난 것으로 생각하고 보도했다.[29] 제1 타워 피격 직후 아직 '테러'로 규정되지 않았던 혼란 속에서, 루이나 출신의 촬영 감독 에반 페어먼(Evan Fairmon)이 현장 인근에서 상황을 촬영하던 중 이 장면을 포착했다. 이 영상은 NA175편의 충돌 장면을 **가장 가까이에서 고화질로 담은 영상** 중 하나로 꼽힌다. 루이나 방송협회는 이 영상을 복원해 고음질 버전으로도 제공하였다.[30] 실제로 당시 다수 언론이 'Attack'이라는 표현을 헤드라인에 썼다.[31] 이후 RBS와 VNL의 뉴스 타이틀은 곧바로 "루이나, 공격받다(Ruina Under Attack)"로 바뀌었다. 이를 보면 2차 충돌을 본 다수 시민들과 언론이 즉각적으로 테러로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32] 당시인 2001년, 루이나는 아직 전국적인 스마트폰 보급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영상 촬영이 가능한 휴대폰도 고급형 일부에만 한정되어 있었다. 대다수 시민은 아날로그 TV나 유선전화에 의존했고, 무선인터넷(WAP) 역시 속도는 느리고 요금은 매우 비쌌다.[33] 실제로는 고온의 잔해가 인근 차량의 휘발유 혹은 LPG 탱크에 떨어지며 급격한 압력 상승으로 연쇄폭발이 발생한 것이다.[34] 이는 2WTC 충돌기(Northern Air 175)가 외벽 측면을 강타했기 때문으로, 건물의 전력과 통신망이 즉시 차단되지 않아 상당 시간 동안 방송과 전력 공급이 이어졌기 때문이다.[시청주의] [36] 수업 참관 직전에 첫 번째 비행기가 남부 타워에 충돌했다는 보고를 받았지만, 당시 엘스워스 대통령과 참모진은 이를 단순한 항공사고로 여겼다. 이후 20주년 특별 다큐멘터리 《1.19: 그날의 기록》에서 엘스워스는 “믿기 어려운 사고라 생각했지, 루이나 본토가 공격당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또한 이 시점까지 대통령 전용차에 타고 있던 엘스워스는 아직 뉴스 영상도 보지 못한 상태였다.[37] 여담으로, 당시 수업에선 '우리 모두의 집(The House for All)'이라는 동화책을 낭독 중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 "We will build again."(우리는 다시 지을 거예요)였던 탓에 음모론적 추측이 돌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우연이며, 루이나 국립교육원에 의해 정기 교육 자료로 사용되던 동화 중 하나였다.[38] 당시 수업은 전국에 생중계되던 ‘우리 아이들의 아침’ 프로그램의 일환이었다.[39] 해당 수업에 참여했던 학생들이 성인이 되어 제작에 참여한 다큐멘터리 《1.19 키즈》에서도 이 점에 대해 엘스워스의 대응을 옹호하는 목소리가 나왔다.